나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했었다. 11살이었던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학 오기 전까지 어언 10년을 켰으니 누가 들으면 엄청 잘할 것이라 기대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 정도로 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요즘 같은 봄방학에 심심하면 꺼내서 켜보고 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바이올린을 해서 얻은 것이 한가지 있다면 클래식의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한국가요나 팝을 듣다가도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에는 꼭 클래식을 찾게 된다. 피아노 독주, 현악 4중주, 콘체르토, 오페라 곡 등 여러가지 잡다하게 듣는데 특히 바이올린협주곡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내가 바이올린을 해서 그런지 바이올린협주곡은 더 애착이 가는 데다 연주가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양을 상상해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Tchaikovsky의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를 자주 듣게된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경화가 연주한 버전은 용량이 너무 커서 못올리고.. 그 대신 하이페츠가 영화에서 직접 연주한 1악장, Allegro moderato을 대신 올려보았다. 원래 1악장은 17분 남짓 하는데 이 동영상은 영화의 한 부분이어서 시간상 곡의 많은 부분이 편집되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Perlman, Milstein, Kremer 등 많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정경화가 연주한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물론 Heifetz가 연주한 곡도 정말 멋있다. Heifetz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확한 음정과 정확한 테크닉을 자랑하기에. 하지만 너무나 정확해서 인간미가 덜 느껴지는데 심지어 기계같은 느낌이 들기가지 한다. 반면 정경화의 연주는 음 하나하나가 풍부한 소리를 내서 오히려 차이코프스키 곡의 느낌을 잘 살려내는 듯 하다.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는 브람스, 베토벤, 멘델스존을 포함한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꼽히는 명곡이다. 이 곡이 태어난 과정은 대충 이렇다.
1877년 Tchaikovsky (1840-1893)는 Antonini Ivanova Milioukov라는 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곧 그게 그의 가장 큰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Sexual inclination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부인과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녀를 Moscow로 보내고 자신은 다른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등의 일을 일삼았다고 한다. 결국 의사에게까지 찾아갔고 이혼과 환경의 변화가 유일한 그의 스트레스의 치유법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곧 그는 Berlin, Switzerland, 그리고 Italy 등으로의 긴 여정을 떠났다.
1878년 3월 Switzerland로 돌아왔을 때 Tchaikovsky는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넘쳐흘렀는지 von Meck이라는 이에게 글을 쓰기를,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have begun to work at a new piece before finishing the one on hand.. I could not resist the pleasure of sketching out the concerto, and allowed myself to be so carried away that the sonata has been set aside”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콘체르토를 쓰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쓰던 곡을 마치기도 전에 새 곡을 시작했다니.
그런데 이렇게 즐겁게 곡을 완성했어도 그 후 곡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 당시 그 곡을 연주하기로 했던 Leopold Auer라는 사람이 처음 곡을 접했을 때 그의 능력을 초과하는 테크닉과 기교를 요구해서 실패했고, Yosif Kotek이라는 두번째 솔로이스트도 배우고자 시도했지만 곧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난항을 거듭하다가 3년 후 Adolf Brodsky라는 사람이 Vienne Philharmonic과 협연하여 연주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휘자나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조차 이 곡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한 데다 Brodsky의 완성되지 못한 기교로 인해 관객들의 반응은 몹시 차가웠다고 한다. “비평계의 원로” 라 불리는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Eduard Hanslic은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 “The violin is no longer played, but torn apart, pounded black and blue… Friedrich Fischer... once said that there existed pictures one could see stink. Tchaikovsky’s Violin Concerto brings us face to face for the first time with the revolting thought: may there not also exist musical compositions that we can hear stink? (이 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는 커녕 찢어버린다.. 프리트리히 피셔는 짜임새 없는 그림을 비평할 때 ‘보고 있노라면 냄새가 나는 그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은 음악 작품에서도 냄새가 나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우리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찢는 콘체르토 (정확한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지만…)라는 평에 크게 상처받은 차이코프스키는 그 혹평을 몇 번이고 읽어 심지어는 외우게까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곡을 연주했던 Brodsky는 런던 등지에서 그 곡을 계속 연주하여 청중의 인기를 이끌어내는데 큰 성공을 불러왔고 결국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