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번 쓴 걸 날렸더니 다시 쓸 기운이 없어져버렸지만ㅠㅠ 그래도 조금씩 써보기로 했다.
5월 16일 부터 17일에 걸쳐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내린 후 밤기차를 타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생장이라는 곳에까지 왔다. 생장으로 오는 두 칸짜리 기차를 탔던 바욘에서 어떤 한국인을 만났었다. 생장행 기차표를 사려고 불어로 된 매표기를 두리번거리면서 헤매고 있을 때 사투리가 섞인 어조로, "멀리서 딱 보니 한국인인 것 같아서"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해서 , 알게 된 화진언니와 생장에 기차에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이 길을 걷게 된 이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전엔 뭐했는지. 길을 다 걸으면 뭘 할건지 등등.. 드디어 생장에 도착하고 보니 아침 9시.. 순례자사무소에 가서 순례자여권을 발급받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매달고 무릎에 덜 무리가 가도록 지팡이를 하나 사들었다. 바욘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같이 타고 왔던 무리들은 대부분 생장에서 머물기로 해서 근처 순례자숙소에 들어갔고 나는 고민하다가 두시간 떨어진 곳에 가서 짐을 풀기로 했다. 언니는 먼저 떠난 후라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출발 하기 직전 또다시 두려워졌다.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길거리에 떡하니 있는 내가 도통 믿겨지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두번째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마을 입구에 있던 성당에 들어갔다. 나에게는 낯선 성당. 미사가 끝난 직후라 문은 열려있었고, 가방을 내려놓고 들어가보니까 몇몇 할머니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눈물날 것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한 쪽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그리고 11kg을 짊어진 나. Hunto로 출발하기 직전.
이 콘크리트 언덕이 바로 내 한 달을 보낸 까미노의 시작이다.
까미노 길을 알려주는 첫번째 표시. 나의 안내자 ㅎㅎ
길을 걷는 33일 내내 양, 소, 말 등 여러 동물을 많이 봐왔는데 길에서 처음 본 소. 그냥 갖다 붙이기지만...
왠지 나보고 잘 걸어내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두시간 죽어라 산을 탄 끝에 도착한 Hunto에 있는 알베르게. 두시간 고생해서 올라온 보람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전망이었다. 사설 알베르게라 안내책자에서 봤던 공립 알베르게보다는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29유로) 그래도 첫날 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씻은 후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 마당이다.
하늘의 명암이 뚜렷한 구름과 그 아래로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보였다.
왠지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데 그걸 이제야 알다니..
왠지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데 그걸 이제야 알다니..
옆에서 수다떨고 있던 독일인 아줌마 중 하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을 먹은 후의 순례자들. 왼쪽의 두명이 나와 첫째밤을 한 방에서 묵었던 스위스 모녀다. Florina 와 Fatima인데 딸이 2주간 휴가가 나서 그 기간동안만 Burgos까지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을 보며 두 가지가 너무나 부러웠다. 하나는 이런 예쁜 길이 같은 대륙에 있어서 휴가 때 등 시간 날 때 part-time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엄마와 딸이 그렇게 함께 걸어간다는 것. 나도 지금은 내 자신 챙기느라 혼자 왔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면 남편과 오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오늘 같이 묵게 된 순례자들이 다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나 뿐이 아니고 모두에게 첫째 날이라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좀 더 깊은 얘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는 할 줄 아는 언어가 독일어 불어 영어 이런식으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어서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게 통역도 해주고. ㅎ 동양인은 나뿐이었고 또 내가 최연소였다. ㅎㅎ 사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길위에서는 내가 나이가 거의 제일 어린 편에 속해 걷는 내내 귀여움을 받았다. ㅎㅎ 내 볼따구가 하루에 한번씩은 꼭 꼬집히거나 쓰다듬어졌던 것 같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