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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반성문


May 6. 2008

1.    Two weeks at InterContinental

단어를 계속 머릿 속에 되뇌이다 보면 어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렸을 혼자 침대에 누워서 은행을 은행은행은행은행은행...하고 계속 중얼거렸던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에 은행을 은행이라고 했는지 낯설게 느껴지면서 신기한 단어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비단 단어 만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주변 환경과 지금 처해 있는 상황도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보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 하고 있는 휴학이 어렸을 혼자 침대에 누워서 단어를 곱씹던 시간과 똑같은 하다. 휴학하는 동안 대책 없이 집안에서 뒹굴 거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밤까지 꼴딱 새면서 게임도 해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무박으로 밤기차 타고 바다도 놀러가고, 무료과외도 해보고, 소박하지만 나름 해서는 안될 것도 해보고, 그리고 인턴도 보았다. 시간 동안 내가 한 일 중에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 획기적인 도움을 만한 것들은 없어 보인다. 이력서에도 좋을 만한 아직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어렵게 구한 인턴은 중도 하차를 했고.

얻은 것이 있다면   한 가지.. 제일 소중한 한 가지가 있다면 주제를 알았다는 것 정도.. 내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그런 상황에 처해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지에 대해 대략적인 방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인턴을 하면서 그걸 가장 마음에 와 닿게 느낄 수 있었다.

비록 2주 밖에 되지 않지만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선배님들을 통해, 주임님 차장님 그리고 같이 로비에서 일하는 다른 부서의 선배님들.. 같이 직원식당에서 밥도 먹고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하면서 그분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로비를 지나다니는 손님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마지막으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정말 나는 같이 일한 선배님들 한 분 한 분을 존경한다. 내가 이렇게 그만 두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정당해 보이는 구실을 만들어서 피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분들은 똑 같이 주어진 상황에서 몇 달 몇 년이고 그렇게 손님들 앞에서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이건 프로가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공부보다 더 어려운 일이 사람을 대하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손님들 앞에서는 웃지만 뒤의 사무실에서 쉴 때 그 분들이 하는 얘기나 전화를 엿들을 때면 그렇게 웃을 수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돈에 얽힌 다른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많지 않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나보고 비행기 많이 타서 좋겠다고 말씀 하시며 한번도 비행기를 못 타봤다는 선배님도 계셨다. 그분들은 현실 속에서 어떤 드라마에 나온 명대사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그런 삶을 사고 계신 것 같았다.

로비에서 돌아다니는 손님들은 처음엔 다 손님이라는 단어로 묶어 그들을 하나로 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개개인의 삶에 대해 궁금해졌고 하나 하나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주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여러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자라서 이런 좋은 호텔에서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고 그런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부에서는 공대에 계속 남아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턴을 하면서 내가 처해 있었던 상황과 환경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정환경이나 유학생으로서.. 공대생으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이 주어진 환경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할게 된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기쁘고 앞이 훨씬 밝아진 것 같다.

2주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고, 또 한 달을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그만둬야 할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렵게 구한 인턴이고 또 약속을 한 게 있는데 염치없이 내 마음대로 깨는 것 같아 진심으로 죄송하고 인내심도 없는 것 같고 정말 많은 실례를 범하는 것 같고... 하지만 한 편으로 다시 나의 갈 길을 가기로 생각을 한 이상 남은 시간을 그 길을 위해 열정을 다해 쏟아 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나를 포기하게 한 것들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위험과 초래될 악영향을 망각한 채 중도포기 해버렸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해서 어떻게 오늘의 이 순간이 온 것일까. 우선 나에게 포기하게 했던 이유들이 무엇일까.

하루하루 일하면서 날마다 뭔가 새로운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선배들이 새로운 실습생인 나를 배려해주어서 자주 쉬게 해주고 그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루 8시간을 한 곳에서 계속 서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계속 서 있다 보면 목 뒤 부분이 심하게 결리고 발에도 물집이 생기고 로비의 담배냄새로 인해 일하는 시간 내내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에 확실히 서비스업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 있다 보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손님이 없을 때 그렇게 몇 시간을 하염없이 서 있을 때면 내가 이렇게 계속 서있기만 해서 무엇을 얻을까 하는 생각이 하염없이 들었다. 물론 벨데스크에서 보는 것이 호텔산업의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소스를 통해 들을 수 있는 호텔 산업에 대해서 들으면서 이곳에서는 나의 비전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미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어느 누구도 호텔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벨데스크 지배인부터 인사부의 차장님조차 공대에 있지 왜 굳이 이곳에서 일할 생각을 했니? 하고 물었고 어떤 분은 심지어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기까지 했었다. 그 어느 누구도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이곳에서 니 꿈을 펼칠 수 있을거다. 라는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지 않았고 매일매일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점점 나는 이곳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주위의 반응과 함께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직접 보는 호텔의 모습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물론 선배들의 프로의식은 내가 본받고 싶어했지만, 내가 그들에게서 프로의식을 봤던 것은 그 일 자체에서 비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들이 일하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날마다 나는 GSTS(Guest Satisfaction Target Survey)라는 손님대상설문지를 30여통 정도 돌렸어야 했고 그 일은 내가 일하면서 분주하게 바쁠 수 있는 유일한 재미였다. 그 날 오후에도 어김없이 편지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층에 와서 계속 돌리고 있는데 어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난 처음에 멀리서 저게 대체 뭔 소릴까 했었는데 그 근처를 지나가는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망각했던 사실을 하나 생각해내버렸다. 아 여긴 사람들이 묵고 가는 곳이었지. 결국 호텔은 그런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겉은 화려해 보여도 호텔산업은 결국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였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받들며 그사람들 아래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인터콘티넨탈의 슬로건 중 하나가 the place where your business becomes a success, 즉 손님들이 중요한 사업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바로 그 장소라는 뜻인데, 이건 겉으로 호텔이란 곳을 화려해 보이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편협된 생각이지만 그 당시 그 장소를 지나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면서 왠지 호텔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순수한 꿈이 깨져버리는 것 같았고 내가 살던 온실이 깨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지내다 보니 계속 몇 시간을 로비에 서있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미래에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내주기만 하는 일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로비에는 그날 있을 행사가 항상 적혀 있는데 그것들을 유심히 보니 호텔을 이용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 기억나는 것들은

a.    Connie Talbot 기자회견

(6살 때 Britains got talent라는 아이돌을 찾는 프로그램에 나와 미국 전체에서 2등을 한 노래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귀여운 영국 여자아이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3600만의 팬들이 생겼고 그들을 울린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다)

b.    대기업 면접

c.    결혼식

d.    IBM 사업자 정상 회의

e.    유명그룹들의 정상회의

f.     유학설명회

g.    여러 종류의 포럼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박근혜, 하버드 MBA를 졸업한 수재 펀드매니저인 강수정의 남편, 매일 운동하러 오는 전지현 등의 사람들이 호텔을 이용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호텔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 분야에 어떤 specialty를 가진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특히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있던 공대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해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나의 최대의 실수

 

하지만 이 모든 것 들을 할 때 내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온 몸으로 온 맘 다해 느꼈다. 바로 responsibility와 인내심을 지니는 것. 호텔에서의 꿈을 접고 나니 나는 이곳에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이곳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호텔산업에서 내 마음이 떠나자 일하는 동안 매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뜻을 인사부에 알리고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저지르고 나서 내가 눈이 멀어 엄청나게 큰 실수를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정말 어렵게 얻은 인턴이었는데 나 혼자만의 self-centered 마음가짐에 다른 요소들을 망각한 채 저질러버렸다. 비록 인턴하는 곳에서 이해해주었고 그만둘 때에 나보고 전공에 대한 결정은 정말 잘 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해줬지만.. 동시에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는 이렇게 내 위주로 행동하는 것이 절대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어디에서 몸을 담던 간에 가장 중요한 덕목들이다. 무엇을 하든 사회라는 곳에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 혼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곳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리고 굳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큰 위험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나와 그들 사이의 신뢰가 깨져버린다. 내가 거짓말하는 사람을 증오하도록 싫어하듯이 책임감 없는 사람도 신뢰를 잃고 그 사람이 남에게 풍기는 향기는 구린내로 바뀔 것이다. 온 몸으로 책임감과 신뢰의 중요성을 배우고 느꼈다.

4.    In the future

이번 일을 평생 마음에 두고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게 되던지 간에 신중함으로 일을 맞이하고 또 한 번 맡은 일은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친구나 선생님, 동료들을 대할 때, 일을 할 때, 학교에서 공부할 때 조차 이번 일을 기억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다. 이런 덕목들 없이는 아무리 공부를 잘 한들 아무리 실력이 좋은 들 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 결코 내가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은 5월 초, 아버지께 제출한 5장짜리 반성문이다..
휴.. 이 무렵은 20대에 접어든 이후 최고로 얼굴을 들기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  
지난 5월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 달 동안 인턴을 하기로 했었는데, 셋째 주가 시작할 무렵 버텨내지 못하고 무턱대고 인사팀에 가서 죄송하다고 내일부터 못하겠다고 말하는 실례를 범해버렸다. 호텔과 교수이신 몇십년 선배를 아빠가 염치불구하고 찾아가서 딸자식 인턴 구해준건데 그렇게 일을 그르쳐 버린 것이다. 당연히 아빠는 화가 끝까지 치밀어올랐고, 나는 날이 밝도록 아빠에게 눈물빠지게 혼났으며, 반성문을 써내기 전에는 얼굴도 내밀지 말라고 그러셨었다.

이렇게 반성을 하며 더이상 한국에 있기가 부끄러워 비행기표 날짜를 앞당겨서 열흘 뒤 카미노길에 올랐다.. 당시 글을 쓰긴 했으나 아빠에게 스스로 찾아가서 드리기가 뭐해서 바탕화면에 저장해놓고는 그냥 스페인으로 사라졌었는데, 결국 나중에 컴퓨터를 쓰시면서 아빠가 읽으셨다고 한다. 나름 심각했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중간에 개그가 가미된 부분과 5장을 채우기 위해 나름 꼼수를 쓴 부분이 보인다...